토익시험을 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이번 시험은 1주일전에 응시할 정도로 급하게 치뤄졌다. 최근 나의 모습은 조급하고 서두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시험이 끝나고 이젠 자소서를 급하게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나니 쉬고 싶었다. 쫓기는 것 없이 여유로워지고 싶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이기에 시험 끝나고 받는 보상처럼, 돌아오는 길은 걸어서 집까지 갔다. 고사장에서 집까지는 대략 30분이 걸린다. 오랜만에 걸으면서 동네 곳곳을 구경했다. 고등학교때 알바생이 예뻐서 친구들이랑 자주 찾아갔던 빵집이나, 고등학교 1학년때 고학년들 때문에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못해서 다른 근처에서 축구했던 중학교 운동장, 새로 생긴 동네 도서관에 들어가 어떤 책들이 있는지도 구경해보고, 평소 가던 길이 아닌 꼬불꼬불 굽어 더 복잡해진 골목길을 탐방하기도 했다.
이렇게 돌아서 왔지만 나의 목적지인 집이 이젠 눈에 보인다. 길은 중요하지 않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내 처지를 보며 피식 웃으며 위로의 미소를 건넸다. 피식 웃던 중에 문방구를 발견했다. 학창시절 등굣길에 준비 못 한 학용품이나 체육복을 구입하던 곳이다. 그랬던 문방구에서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있는 것이 있다. 뽑기 자판기다. 또 여전히 뽑기 자판기 앞에는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며 즐기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시절엔 즐겼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도박의 즐거움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방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과연 코흘리게 애들 돈을 뺏어가는 딜러는 누굴까하는 의문을 풀고 싶었기에. 하지만 딜러인 문방구 아저씨는 오히려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시간이 지나 얼굴은 잊었지만 다시 보니 어렴풋이 그때의 문방구 아저씨 모습이 떠올랐지만 10줄의 주름이 더 그려져 있었다.
인사를 건넨 후 문방구 안을 구경했다. 학창 시절에는 이 문방구가 정말 재밌는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의 나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최근 유행하는 나노 블럭과 나름 준밀덕인 나에게 K2와 M4A1 장난감 총에만 눈이 간다. 무튼 그때는 놀이공원이나 다름없던 문방구가 초라하게 보인 이유는 내가 늙은 탓일까? 아니면 문방구가 점점 작아져서 그런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중에 아까 밖에서 뽑기 하던 아이들이 우루루 들어오면서 자신이 뽑은 칩을(?) 딜러와 물물교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이 모습은 변함없는 듯하다. 그리곤 몇 없는 군것질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군것질 코너를 보니 옛날보다 군것질거리가 줄어든 듯하다. 수요가 줄어든 것인지 아니면 불량 식품 근절한다는 법이 제정된 것이 영향 끼친 것인지는 또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최고의 레스토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작아진 군것질 자판대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했다.
아이들은 서로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며 서로서로 추천하고 있었다. 같이 따라온 여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인형 앞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과자 몇 개를 들고 계산하고 뛰어나가는 아이들은 나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고, 아이들이 떠나고 남겨진 공책, 샤프, 볼펜, 붓, 풀, 실내화, 문제집, 몇몇 장난감 그리고 군것질거리가 남았다. 추억에 잠긴 나는 마침 가지고 있는 잔돈 500원으로 군것질거리를 구매하고 아이처럼 뛰쳐나오는 심정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고선 아까 구매한 군것질거리를 먹으면서 마저 생각해본다. 잡다한 것들로 둘러싸인 문방구. 그곳은 잡다한 물건이 쌓인 곳이 아니라 어찌 보면 추억이 쌓여놓은 곳이 아닐까 싶다. 바쁜 삶 속에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뭔가 여유를 발견한 기분이다. 세상이 변해도 천천히 여유롭게 변하는 곳이 있다는 것과 굳이 내가 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을 얻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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